한인단체/기관 > 문협-에세이 산책, 자갈 돌과 아버지

본문 바로가기
  • FAQ
  • 현재접속자 (1243)
  • 최신글

LOGIN

한국문인협회 | 문협-에세이 산책, 자갈 돌과 아버지

페이지 정보

작성자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9-12-22 09:30 조회1,711회 댓글0건
  • 목록
게시글 링크복사 : http://www.indoweb.org/472961

본문

문협-에세이 산책 

자갈 돌과 아버지

2107738372_1576981609.72.png

지나 / 수필가, 싱가폴 거주(한국문협 인니지부 명예회원)


  흔하 디 흔한 자갈 돌이었다. 특이한 모양도 탐낼 만한 빛깔도 전혀 아니었다. 여느 월요일과 다름없던 햇살 좋은 아침, 아버지가 그리울 일은 없을 것 같던 내게 적도의 땅인 싱가포르에서 아버지가 잠드신 한국의 태종대 바닷가로 내 기억을 끌어 다 놓은 회색 자갈 돌 두 개, 아버지와 이별한지 꼭 10년만이다. 그래! 그리움이란 이렇게도 오는 거다. 단 번에 온몸의 혈류를 마구 흔들어 놓고, 사막 한가운데 햇살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처럼 무자비하게 뜨거워지다가, 명치 끝을 누르고 방어할 틈도 없이 왈칵 차오르는 눈물로 거칠게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다. 

2107738372_1576981714.7854.png

  아버지를 깊이 사랑했던 순간을 곰곰이 더듬어 보아도 떠오르는 것이 없다. 저 먹먹한 자갈 돌처럼 무심하게 아버지를 대하던 딸, 그래서 일까? 아버지는 돌아가신 후 한 번도 내 꿈에 나타나지 않으셨다. 원래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까맣게 잊혀졌다가 문득 비슷한 걸음걸이를 가진 노인의 뒷모습에서, 생의 마지막 즈음에 스러지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르다 금새 사라지곤 했다. 아버지의 유해가 뿌려진 곳은 자갈 돌이 유난히 많은 부산 태종대 바닷가 근처 큰 바위 아래였다. 아버지를 보내 드리던 날, 철썩 이는 파도를 버티며 꼿꼿이 서있는 두 개의 큰 바위 사이로, 파도에 온몸을 맡기고 빼곡하게 모여 있던 자갈 돌들이 ‘짜그락 짜그락’ 오랫동안 함께 울던 소리를 나는 잊지 못한다. 나에겐 아버지의 살아생전 목소리보다 더 깊이 박힌 소리가 되었다.

2107738372_1576981747.5214.png

  아버지는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였다. 하루 두 세 마디 이상은 하지 않으셨고, 사업으로 항상 바쁘셨다. 그 시대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그러했듯이, 가족을 사랑하셨지만 가족과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 지를 잘 알지 못하셨다. 친 할아버지와 너무 일찍 떨어져 부정을 배우지 못한 젊은 가장. 그런 아버지에게 나는 불만조차 없었다. 애초에 살가운 아버지를 기대조차 하지 않은 것은 나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일용할 양식과 학교의 등록금과 가족들이 원하는 것들을 위해 당연히 희생해야 하고, 다정하지 못한 것은 아버지의 태생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한 인간으로서의 아버지에 대한 관심과 연민을 갖지 못한 자식의 이기심이었다.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미군 파일럿이 입었다는 허리 짧은 연한 국방색 메뚜기 점퍼를 즐겨 입으셨다. 폭이 좁은 골댄 바지에 ‘랜드로바’ 형 가죽구두를 신으면 아주 폼이 났다. 걸음은 날아다니는 것처럼 빨랐고 권투도 잘 하셨다. 다부진 체구에 언제나 에너지가 넘치는 사나이였다. 어느 날, 그렇게 건장하시던 아버지는 새벽 등산길에 큰 사고를 당하셨다. 병원에 입원하신 아버지는 급격히 노인이 되어갔고, 아주 느린 걸음으로 조금씩 걷는 것이 아버지에게 허용된 유일한 신체의 자유였다. 갑작스런 사고로 인한 후유 장애는 아버지의 자존심을 심하게 상처 내며 할퀴었고, 가족을 제외한 외부인을 아무도 만나려 하지 않으셨다. 아버지의 시대가 저무는 쓸쓸하고 고독한 오후가 오랫동안 이어졌다.

2107738372_1576981783.0798.png

  아버지의 존엄이 무너지기도 전, 아버지는 시신기증에 동의한다는 서명을 하셨다. 3일장이 끝나자 두 손을 나란히 모은 모습으로 구급차에 실려가던 아버지의 창백했던 얼굴이 마지막이었다. 아주 낯선 이별이었다. 시신이 연구 목적으로 사용되고 난 지 2년 후 화장터에서 아버지의 유골을 수습할 때, 아버지가 “꼭 막내가 다니던 대학 뒤편 바닷가에 나를 뿌려다오.” 하셨다는 걸 알았다. 비릿한 미역냄새가 휘 감고 자갈 돌들이 물에 쓸려 ‘와글와글’ 대는 그 바다에서, 아버지는 러시아 선장, 이태리 선장 등과 협상을 하던 혈기 왕성한 젊은 시절의 당신을 만나고 싶으셨을 것이다. 가장 사랑하던 막내아들의 스무 살 대학시절을 추억하면서…

2107738372_1576981805.9548.png

  가만히 눈을 감고 태양아래 뜨거워진 메마른 자갈 돌을 만져본다. 다섯 손가락으로 셀만큼 몇 안 되는 아버지와의 추억들이 서해를 건너 싱가포르 해협을 지나 내 갈비뼈 사이를 아리게 누르면서 가지런히 일어나고 있다. ‘아버지가 자갈 돌을 통해 나에게 말을 걸고 계신 것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서툴렀지만 가족들을 많이 사랑했었다 고 아버지는 그렇게 깊이깊이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목록
   
한인단체/기관 목록
  • Total 3,012건 37 페이지
한인단체/기관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2004 기타단체 신한금융그룹, 인도네시아에 코로나19 진단키트 기부 인기글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06-01 2049
2003 기타단체 코린도그룹, 파푸아에 마스크 이어 방호복 지원 인기글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05-29 1728
2002 기타단체 ‘아름다운 오지 공동체’ 일군 코린도그룹, 파푸아에 방호복 지원 인기글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05-29 2029
2001 한국문화원 K-Sport 태권도 교실 방송 인기글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05-29 1635
2000 한국문화원 K-Medicine, 한인 한의사초청 ‘코로나19 이렇게 극복하… 인기글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05-29 1514
1999 한국문화원 코로나로 ‘집콕’... 무료함 달랜 문화원 K-Food 챌린지 인기글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05-29 1754
1998 기타단체 [르포] 인도네시아에 '특별한' 바이러스 퍼뜨리는 한국 인기글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05-21 2183
1997 한인회 땅그랑반튼한인회, 인도네시아에 '코로나19 구호품' 전달 인기글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05-20 1869
1996 기타단체 [르포] 인도네시아판 '구룡마을'에 닿은 한국인의 온정 인기글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05-20 1928
1995 기타단체 우리은행, 인도네시아에 코로나19 방호복 5천벌 기부 인기글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05-19 1907
1994 한인회 땅그랑지역 PSBB 연장 인기글첨부파일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05-17 1853
1993 기타단체 ㈜지피엔이, 인도네시아 중소기업부에 항균〮항바이러스 용액 1톤 … 인기글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05-14 1927
1992 기타단체 현대엔지니어링, 인도네시아 국가재난방지청 (BNPB)에 Covi… 인기글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05-14 1987
1991 대구․경북 한-인도네시아협회, 인도네시아도 힘내세요! 인기글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05-12 1579
1990 건설협의회 건설협의회 | 창조 Vol.41 인기글 jamesbirdi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05-10 1972
1989 한국문화원 해외 석학들이 말하는 코로나 이후의 세계 전망 : 코로나 이후 … 인기글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05-08 2281
1988 기타단체 [KOCCA 입찰] 2020 동남아 콘텐츠산업동향 및 시장분석보… 인기글첨부파일 koccaindones…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05-08 2172
1987 봉제협회 한국봉제산업을 선도하는 KOGA Vol.30 인기글 jamesbirdi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05-08 1976
1986 기타단체 국립강원대학교, 인도네시아대학교 의과대학에 방호용품 전달 인기글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05-06 1976
1985 한국문화원 인도네시아 한류팬들, 온라인으로 만나요 인기글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05-05 2021
1984 한인회 고려대학교 안산병원 코로나바이러스 협력 상담 이용 안내 인기글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05-05 1773
1983 한인회 2020년 5월 4일 11시 기준 PSBB 시행 현황 인기글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05-04 1771
1982 한인회 한인뉴스 2020년 5월호 인기글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05-01 2171
1981 기타단체 현대엔지니어링, 인도네시아 Covid-19 극복을 위한 4억원 … 인기글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04-29 1818
1980 신발협의회 재인니한국신발협의회 코파의 힘 Vol 68 인기글 jamesbirdi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04-29 1942
1979 봉제협회 한국봉제산업을 선도하는 KOGA Vol.29 인기글 jamesbirdi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04-22 2070
1978 월드옥타 인니 한인 스타트업, 냉동 박스 달린 오토바이로 '집콕족' 겨냥 댓글1 인기글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04-21 2949
1977 한인회 한인뉴스 2020년 4월호 인기글 비다까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04-15 2138
게시물 검색

인도웹은 광고매체이며 광고 당사자가 아닙니다. 인도웹은 공공성 훼손내용을 제외하고 광고정보에 대한 책임을 지지않습니다.
Copyright ⓒ 2006.7.4 - 2025 Powered By IndoWeb.Org. All rights reserved. Email: ad@indoweb.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