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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 바다를 깨우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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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바다사나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4.♡.214.137) 작성일11-02-20 03:33 조회5,025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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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양을 항해하다 보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잔잔한 바다가 펼쳐질 때도 있다
이런 바다를 가르켜 "면경지수'라느니
'호수와 같이 잔잔한 바다"라느니 하며
뱃사람들은 순항의 기쁨을 만끽한다
 
그러나 노선원들은 젊은 선원들이 날씨가 좋다는 소리를 할라치면 불호령을 내린다
잔잔한 바다는 자칫 오만해지기 쉬운 인간에게
신이 발하는 경종의 증조이기 때문이다
변화무쌍한 자연의 바다에는 곧 세찬 바람이 일어나고
이와 더불어 산 같은 파도가 일어 수만톤 아니 수십만톤의 거선을 일시에
잡아 삼킬 듯 달려든다
 
이러한 환난의 바다에 휩쓸려 들지 말아야 하는 것이 상책이겠지만
불행하게도 이러한 처지에 당면했을 때에
뱃사람이 취해야할 행동강령의 제일조는 냉정하게
해상과 기상상태를 다시 파악하는 것이다
황천항해에서 실기(失機)한다는 것은
곧 죽음과도 통하는 것이어서
이처름 가공할 만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마도 전쟁을 빼놓고는 우리사회에서 그 예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 다음 하여야 할 일은 판단에 따라 힘을 합쳐서
일사분란하게 대처하는 것이다
대처방법은 상황에 따라 달라져야 하겠지만
경우에 따라 선박과 인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화물 및 선체의 일부를 물속에 던져 버리는
제티슨(Jettison)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택하기도 한다
황천항해로 부터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하며
이 배가 어디로 가고 있으며 또 어떤 짐을 싣고 있는가를 냉정히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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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빡 빨아대던 담배를 손끝으로 튕겨 불안과
간단없이 밀려드는 사념을 털어버리듯 바다에 던지고
후 쿵쾅 거리는 엔진음과 함께 달려가고 있는 배의 앞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희미한 바다는 고요했다
 
높새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겨울의 해역같지 않게
잔잔한 것은 앞쪽에 길게 엎딘 군도가 방파제 구실을 해주는 때문도 있지만
다분히 안개 탓으로 보였다
 
흔들림 없는 대기가 고기압 중심에 들어있음을 짐작케 했다
나는 폐유처름 검어 더욱 음산한 느낌이 드는 수면을 쏘아 보았다
짐짓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듯 부드럽게 흐르는 물결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미 그 밑 어디엔가 잔뜩 웅크리고 앉아
걸려들기만 기다리고 있을 암초를 눈치채고 있었다
 
지나온 곳곳마다 불쑥불쑥 솟구쳐 올라서며 번번히 골탕 먹여왔던 그 지긋지긋한 암초는
이번에도 예외가 없을 것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겉옷에 달라붙은 물기가 더욱 싸늘하게 느껴져
한차례 진저리를 쳤다
 
얼굴에 찐득하게 올라붙은 물기를 손바다으로 훔쳐낸뒤 겨드랑이 사이에 끼워두었던
쌍안경을 빼어들었다
우물거릴 틈이 없다
한시 바삐 등대를 찾아서 암초의 사슬에서 벗어나픈 나는
물기로 미끈거리는 쌍안경을 고쳐지며
벌써 수차례 거듭해온 등대를 다시 찾아 나서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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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바다를 경계짓는 수평선이 희뿌연 어둠에 지워져
대충 어림잡아 쌍안경을 그어댈수 밖에 없는 나는
앉아있는 이편부터 반대편까지 두 세 차례 왕복하며 집요하게 물안개를 헤쳐댔다
 
그러나 나의 노력은 이번에도 무위로 끝날수 밖에 없었다
물안개는 한치의 양보없이 나의 쌍안경 속에 벽을 세우고
급기야는 렌즈 위에 물기로 흘러내려
마치 돗수를 잘못 찾아 쓴 돋보기 안경으로 보는 것처름
뱃머리 마스트나 갑판과 줄지어 선 크레인들 마저도
물에 잠긴 사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염병할 ,퉤
쌍안경을 거둬들이며 가래처름 끓어오르는 울화를 뱉어내기라도 하듯이 바다에 침을 뱉었다
기대어 앉은 자세에서 몸을 풀었다
육안으로는 도저히 물안개로 단단히 무장한 등대를 찾을 수 없다고 판단이 섰다
나는 걸음을 브릿지쪽으로 옮겼다
 
침착하자고 몇번을 되뇌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바빠진 나는 꺼부정한 키에 휘청거리는 잰걸음이 되고 말았다
브릿지 내부에는 바깥보다 더 농밀한 어둠이었다
불량한 시계(視界)탓에 더욱 빛의 단속을 강화한 브릿지는
흡사 공동묘지 같은 음산함 마저 느꼈다
 
잠시 주춤하다가  단지 오랜 야간근무를 통해 익힌 방향감각을 더듬이로 내 세워
안으로 들어갔다
어둠은 더딘 걸음과 함께 조금씩 뒤로 물러섰다
자동조타기가 채각 채각 소리를 내면서 부지런히 정침된 코스를 찾아가고 있었다
 
테이블을 지나 레이더에 다가 가던 나는 조금 익어있는 어둠속에서
유리창 부근을 서성대는 그림자를 볼수가 있었다
함께 근무를 서는 조타수였다
 
"뭐가 보이냐 ?"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선장님 ! 뭐가 보이긴요 -----
"이건 숫제 먹물이라예"
조타수는 마치 준비라도 해두었던 것처름 엄살을 부려왔다
 
"니기미럴"
"그래도 넌 속이야 편하것지"
쉽고도 빠르게 떨어진 상대의 대답 때문인지
혹은 조바심에 쫒기고 있는 내 자신에게인지 분명치 않은 불만을 짓씹으며
레이다 화면을 확인한 나는 다시 인상을 찌푸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리도등대.jpg
 
비칠거리는 걸음으로 물러나 간이소파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는 일시적인 치매상태로 빠져 들고 말았다
어떻게 해야 옳은지 알길이 없다
지금까지 이십 년 가까운 선상의 경험은 물론 살아왔던 모든 시간마저
하잘데 없는 것으로 전락해 버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살아오는 동안 종종 예기치 못했던 압류에 떠밀리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거나
암초에 걸려 넘어져 상처를 입을 때마다 나는 그것을 치유하기에 앞서
질펀한 구렁에 내 던져져 치매에 빠져들고는 하였다
"깐놈의 거 당찮은 새도 바다를 나는데
하늘이 열리고 그 위로 흐린 빛이나마 윤곽을 드러내는 별들 ----
다시 두손에 힘을 주며 쌍안경을 꽉 쥐었다
 
그리고는 혼탁한 물안개속을 천천히 헤쳐가기 시작했다
"그래 꼭 꼭 숨어있거래이"
"어디 언 놈이 이기나 해보자"
"내 기어코 내놈을 찾아내고 말끼다"
"그 땐 네놈도 술레여 "
집요한 노력이 환영을 보게 만들었을까 ?
 
거의 숨을 멈추다시피 물안개속을 낱낱이 훑어가는 나의 눈에 희떡 걸리는게 있었다
아! --------아 !
나는 짧은 탄성과 함께 쌍안경을 고정 시켰다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느낌이었지만
조금도 쌍안경을 흐트리거나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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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무렵이었다
헛것을 본게 아닐까 하는 의심과 함께 벼랑 끝에 선 절망감이 다시 나의 머리속을 휘저어대기 시작하였다
이 즈음 나는 어둠 저편에 섬광 하나가 피어올랐다 사그라지는걸 놓지지 않았다
등 등대다 !
그러나 나의 음성은 마른 입안에서 맴돌았다
"등대다 등대여 !'
이윽고 나는 소리치기 시작 했다
 
나의 목소리는 점차 안개처름 젖어들고 있었다
근무교대를 하다 나의 외침소리에 조망갑판으로 달려온 조타수들이나
옆에선 항해사는 정작 내가 가르키는 등대에 아랑곳없이
"저기 .저기 등대야  등대여 ---"
젖어드는 목소리에 더엉실 춤을 추듯
손을 내젖고 있었다
 
흐린 수평선 위로 마악 불빛 하나가 터져 올랐
다 ----------------------------------
 
                  신영수 (바다사나이) / youungsu49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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