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낙서장~ > 아내에게(펀글)

본문 바로가기
  • FAQ
  • 현재접속자 (804)
  • 최신글

LOGIN

1.궁금한 사항은 "궁금해요" 게시판을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단순 내용 펌은 삭제 처리합니다. 본인의 의견을 적어주세요.

감동 | 아내에게(펀글)

페이지 정보

작성자 블록M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1.♡.144.42) 작성일08-03-07 02:27 조회5,176회 댓글4건
  • 검색
  • 목록
게시글 링크복사 : http://www.indoweb.org/love/bbs/tb.php/memo/29289

본문

아내에게


1_1169_1.jpg


저만치서 허름한 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방걸레질을 하는 아내...
"여보, 점심 먹고 나서 베란다 청소 좀 같이 하자."
"나 점심 약속 있어."

해외출장 가 있는 친구를 팔아 한가로운 일요일,
아내와 집으로부터 탈출하려 집을 나서는데
양푼에 비빈 밥을 숟가락 가득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아내가 나를 본다.
무릎 나온 바지에 한쪽 다리를 식탁위에 올려놓은 모양이
영락없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아줌마 품새다.

"언제 들어 올 거야?"
"나가봐야 알지."

시무룩해 있는 아내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가서,
친구들을 끌어 모아 술을 마셨다.
12시가 될 때까지 그렇게 노는 동안,
아내에게 몇 번의 전화가 왔다.
받지 않고 버티다가 마침내는 배터리를 빼 버렸다.

그리고 새벽 1시쯤 난 조심조심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내가 소파에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자나보다 생각하고 조용히 욕실로 향하는데
힘없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 갔다 이제 와?"
"어. 친구들이랑 술 한잔.... 어디 아파?"
"낮에 비빔밥 먹은 게 얹혀 약 좀 사오라고 전화했는데..."
"아... 배터리가 떨어졌어. 손 이리 내봐."

여러 번 혼자 땄는지 아내의 손끝은 상처투성이였다.

"이거 왜 이래? 당신이 손 땄어?"
"어. 너무 답답해서..."
"이 사람아! 병원을 갔어야지! 왜 이렇게 미련하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여느 때 같으면, 마누라한테 미련하냐는 말이 뭐냐며
대들만도 한데, 아내는 그럴 힘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냥 엎드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기만 했다.
난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내를 업고 병원으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내는 응급실 진료비가 아깝다며
이제 말짱해졌다고 애써 웃어 보이며
검사받으라는 내 권유를 물리치고 병원을 나갔다.

다음날 출근하는데, 아내가 이번 추석 때
친정부터 가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노발대발 하실 어머니 얘기를 꺼내며 안 된다고 했더니
"30년 동안, 그만큼 이기적으로 부려먹었으면 됐잖아.
그럼 당신은 당신집 가, 나는 우리집 갈 테니깐."

큰소리친 대로, 아내는 추석이 되자,
짐을 몽땅 싸서 친정으로 가 버렸다.
나 혼자 고향집으로 내려가자,
어머니는 세상천지에 며느리가 이러는 법은 없다고 호통을 치셨다.
결혼하고 처음. 아내가 없는 명절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는 태연하게 책을 보고 있었다.
여유롭게 클래식 음악까지 틀어놓고 말이다.

"당신 지금 제정신이야?"
"....."
"여보 만약 내가 지금 없어져도,
당신도 애들도 어머님도 사는데 아무 지장 없을 거야.
나 명절 때 친정에 가 있었던 거 아니야.
병원에 입원해서 정밀 검사 받았어.
당신이 한번 전화만 해봤어도 금방 알 수 있었을 거야.
당신이 그렇게 해주길 바랐어."

아내의 병은 가벼운 위염이 아니었던 것이다.
난 의사의 입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지금 뭐라고 말하고 있는 건가,
아내가 위암이라고? 전이될 대로 전이가 돼서,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다고?
삼 개월 정도 시간이 있다고...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아내와 함께 병원을 나왔다.
유난히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맑았다.
집까지 오는 동안 서로에게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엘리베이터에 탄 아내를 보며,
앞으로 나 혼자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돌아가야 한다면 어떨까를 생각했다.

문을 열었을 때, 펑퍼짐한 바지를 입은 아내가 없다면,
방걸레질을 하는 아내가 없다면,
양푼에 밥을 비벼먹는 아내가 없다면,
술 좀 그만 마시라고 잔소리해주는 아내가 없다면,
나는 어떡해야 할까...

아내는 함께 아이들을 보러 가자고 했다.
아이들에게는 아무 말도 말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은,
갑자기 찾아온 부모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살가워하지도 않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공부에 관해, 건강에 관해, 수없이 해온 말들을 하고있다.
아이들의 표정에 짜증이 가득한데도,
아내는 그런 아이들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만 있다.
난 더 이상 그 얼굴을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여보, 집에 내려가기 전에...
어디 코스모스 많이 펴 있는 데 들렀다 갈까?"
"코스모스?"
"그냥... 그러고 싶네. 꽃 많이 펴 있는 데 가서,
꽃도 보고, 당신이랑 걷기도 하고..."

아내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이런 걸 해보고 싶었나보다.
비싼 걸 먹고, 비싼 걸 입어보는 대신,
그냥 아이들 얼굴을 보고,꽃이 피어 있는 길을 나와 함께 걷고...

"당신, 바쁘면 그냥 가고..."
"아니야. 가자."

코스모스가 들판 가득 피어있는 곳으로 왔다.
아내에게 조금 두꺼운 스웨터를 입히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여보, 나 당신한테 할 말 있어."
"뭔데?"
"우리 적금, 올 말에 타는 거 말고, 또 있어.
3년 부은 거야. 통장, 싱크대 두 번째 서랍 안에 있어.
그리구... 나 생명보험도 들었거든.
재작년에 친구가 하도 들라고 해서 들었는데,
잘했지 뭐. 그거 꼭 확인해 보고..."
"당신 정말... 왜 그래?"
"그리고 부탁 하나만 할게. 올해 적금 타면,
우리 엄마 한 이백만원 만 드려.
엄마 이가 안 좋으신데, 틀니 하셔야 되거든.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 오빠가 능력이 안 되잖아. 부탁해."

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아내가 당황스러워하는 걸 알면서도, 소리 내어... 엉엉.....
눈물을 흘리며 울고 말았다.
이런 아내를 떠나보내고... 어떻게 살아갈까....

아내와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아내가 내 손을 잡는다.
요즘 들어 아내는 내 손을 잡는 걸 좋아한다.

"여보, 30년 전에 당신이 프러포즈하면서 했던 말 생각나?"
"내가 뭐라 그랬는데..."
"사랑한다 어쩐다 그런 말, 닭살 맞아서 질색이라 그랬잖아?"
"그랬나?"
"그 전에도 그 후로도, 당신이 나보고
사랑한다 그런 적 한 번도 없는데, 그거 알지?
어쩔 땐 그런 소리 듣고 싶기도 하더라."

아내는 금방 잠이 들었다.
그런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도 깜박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커튼이 뜯어진 창문으로,
아침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여보! 우리 오늘 장모님 뵈러 갈까?"
"장모님 틀니... 연말까지 미룰 거 없이, 오늘 가서 해드리자."
"................"
"여보... 장모님이 나 가면, 좋아하실 텐데...
여보, 안 일어나면, 안 간다! 여보?!..... 여보!?....."

좋아하며 일어나야 할 아내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난 떨리는 손으로 아내를 흔들었다.
이제 아내는 웃지도, 기뻐하지도, 잔소리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난 아내 위로 무너지며 속삭였다. 사랑한다고...
어젯밤... 이 얘기를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아내... 남편...
보통 인연으로 만난 사이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마음, 제껴두지 마십시오.
지금 더 사랑하고 더 아끼세요.


1_1169.jpg

- 곁에 있는 이 순간, 가장 잘해줍시다. -



좋아요 0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yoel님의 댓글

yoel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아이피 125.♡.177.206 작성일

좀 늦었지만 , 좋은글 감사합니다. 저도 예전에 읽었고 그때도 지금처럼 맘 먹었는데... 이 글 보기 전에 아내한테 전화기에 대고 한소리 한 것이 더 걸리네요... 맛있는 저녁과 함께 사과해야 겠어요. 좋은 하루 되세요.

wolf님의 댓글

wolf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아이피 125.♡.176.107 작성일

예전에 교민잡지에서 읽었던 글이었는데...

오늘 또 보아도 ......

부끄럽게시리 자꾸 하늘을 보게 만드네요.

부울독님의 댓글

부울독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아이피 116.♡.0.254 작성일

끝까지 보았네요. 앞이 뿌예 지내요.
이광석이가 불렀던 어는 60대 노부부의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오늘은 와이프에게 잘 해주어야 겠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 검색
  • 목록
주절주절 낙서장~ 목록
  • Total 2,579건 1 페이지
  • RSS
주절주절 낙서장~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2579 감동 우리 안의 제국주의 Jawafrog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9-12-23 4819
2578 감동 센츄리 은행 구제금융 스캔달 댓글8 빌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9-12-10 5016
2577 일상 KTV가 지금 서비스 중인가요??? 댓글5 자스민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9-12-02 6908
2576 기타 신종불루,싸스등 온역의 특효예방약공개 스리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9-11-11 4731
2575 일상 컴퓨터고치는사람 댓글1 해리포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9-10-29 5967
2574 일상 솔리드님 글보고서리 뻘짓..ㅋ 댓글4 첨부파일 상리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9-09-11 5007
2573 일상 아랍인들이 장난끼 살벌함 데니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9-08-31 5317
2572 일상 화끈한 정력 음식 으로 밀어 부치기... 댓글6 데니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9-08-26 5078
2571 기타 탈모예방과 모발 관리에 좋은 음식 데니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9-08-19 5021
2570 일상 남정네들의 나체사진..???헉!! 댓글2 데니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9-08-12 6064
2569 기타 "아침" 바나나 다이어트 해 ~보시겠습니까? 데니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9-08-08 7417
2568 일상 두 아들과 두 아버지 댓글5 엔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9-07-18 5443
2567 일상 (펌) 실제 있었던일 댓글5 여기인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9-07-10 4801
2566 일상 처음으로 글을 씁니다.. 댓글9 릴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9-07-04 6431
2565 일상 (펌)다시 봐도 웃긴답변들^^ 댓글6 redsnow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9-06-28 4621
2564 감동 만남 / 클릭 안 하시면 엄청손해... 댓글3 데니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9-06-18 4348
2563 일상 여보, 옛날 방식대로 하소 .... 댓글5 데니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9-06-08 5058
2562 일상 한자 아님 이상한 이름들 ㅋㅋㅋ 댓글8 kodeka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9-06-01 6144
2561 일상 6월1일 벙개합니다~ 댓글8 요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9-05-27 6845
2560 감동 ㅇrㄸi의 아보카도- rain. 비. hujan 댓글7 ㅇrㄸi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9-05-17 6116
2559 일상 인도웹의 포인트 정책 댓글13 첨부파일 불타는오소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9-05-10 4802
2558 기타 양생법(養生法) –배꼽 건강법. SOL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9-05-02 8116
2557 기타 양생법-잠이 보약2 SOL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9-05-02 5927
2556 기타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인도네시아 고구마 ....'씽콩' SOL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9-05-01 9955
2555 기타 우기를 보내고 건기를 맞이하는 과일, 두꾸 SOL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9-04-30 6555
2554 일상 중국의 원숭이 얼굴을 한 기형 돼지(펀글) 댓글2 창공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9-04-23 5732
2553 일상 국산 담배값이 파는곳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납니다. sulaiman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9-04-02 5955
2552 감동 어느 장애인 장발장의 노래 - 법대로 처리된 육백원 절도범을 위하여 댓글1 첨부파일 물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9-03-07 4818
게시물 검색

인도웹은 광고매체이며 광고 당사자가 아닙니다. 인도웹은 공공성 훼손내용을 제외하고 광고정보에 대한 책임을 지지않습니다.
Copyright ⓒ 2006.7.4 - 2024 Powered By IndoWeb.Org. All rights reserved. Email: ad@indoweb.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