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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과 한국의 테니스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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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돌도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2-07-29 10:19 조회8,96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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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테니스 역사
테니스 경기의 원류를 추적하기란 쉬운 작업이 아니다. 구구한 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대 이집트와 페르시아에서 이와 비슷한 경기를 했으며 그리스와 로마에서도 즐겼다는  것으로 보아 이미 11세기 경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주로 왕후 귀족과 사원의 승려들에 의해서 행해지고 있던 볼 게임의 일종으로 손바닥으로 공을 치는 라 뽐므(La Paum)란 게임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 것이 정설이며 이 경기의  발생시부터 오늘날까지 일관된 경기 방식은 볼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볼을 치는 경기라는 것이다.
또한 12세기초부터 16세기까지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했던 이 경기는 12세기 프랑스  수도원에서 고안되었다고 하며 쥬 드 폼므(Jew de Paume)(구희(球戱)관)이라고 불렀다. 폼므란 프랑스어로 손바닥을 말하며 이것이 13세기 경 프랑스 귀족과 성직자들 사이에서 쥬 드 폼므라는 손바닥 게임으로 발전했다. 쥬 드 폼므는 털이나 천을  채워 둥글게 만든 공을 맨손이나 장갑을 끼고 손바닥으로 때리던 경기로써, 코트의 중앙에 만든 경계 벽을 넘어서 반대쪽 3방향의 벽 어디에든지 손바닥으로 공을 쳐 넣으면 상대방은 이 공을 직접 또는 한 번 바운드 된 공을 손바닥으로 다시 쳐서 넘기는 경기였다.
이러한  쥬 드 폼므 경기가 테니스라고 불리게 된 것은 볼을 치라고 하는 테네(tennez)라고 하는 발음에서 1360년경 영국인들이 자기 나라에 테니스라고 하는 명칭으로 조어하여 소개할 때부터라고 한다.
이 경기는 왕후귀족과 승려들이 가장 애호한  스포츠 중 하나이며 중세 유럽에서는  중요한 경기 중 하나였다. 쥬 드 폼므는 수도원의 정원을 모방하여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코트의 구조와 복잡한 룰, 그리고 볼을 만드는  사람을 왕후귀족이 고용한 것 등을 볼  때 이 게임은 왕후귀족의 전유물로 삼았던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14세기 경에는  신흥 세력인 도시 귀족들도 쥬 드 폼므 경기에 열중하기 시작하여 각 도시에도 많은 구희(球戱)관이 세워짐으로써 점차 대중화되어 갔으며 대학생들도 애호하게 되어 중세 유럽의 대학 도시에는  필수적으로 이 구희관이 세워졌다고 한다. 쥬 드 폼므는 손바닥으로 볼을 되받아치는 경기이기 때문에 참가자들은 너무 손이 아파 장갑을 끼고 경기를 하던 중 손 대신에 다른 타구 도구를 찾게 되었으며 15세기 후반에  라켓을 고안하여 16세기 경에는 라켓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  경기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스포츠로서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1596년 파리의 인구 30만명에 코트는 250개가 있었다고 한다. 쥬 드 폼므는 게임 자체를 즐기는 것도  있었지만 도박을 즐기는 것에도 큰 비중을 두고 있었으며 사람들은 일 파운드의 내기 돈을 지불하거나 도박 등으로도 이 게임을 즐겼다고 한다. 그러나 이 경기는 17세기경 계몽주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급속하게 쇠퇴하여 일부 애호가들에 의해 겨우 전승되어 왔으며 폐쇄된 구희관은 점차 극장으로 개장되어 계몽주의 시대의 연극 붐에 공헌하게 되었다.
또한 12세기 프랑스 피카르디 지방의 수도원 정원에서 탄생하였다고 하는 쥬 드 폼므 경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가 많이 있다. 즉, 이 게임이 수도원에서 고안되었다고 하여도 그 이후의 역사는 거의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또한 마찬가지로 손바닥으로 볼을 치는 게임은 북프랑스 만이 아닌 벨기에, 네덜란드, 영국, 그리고  바스크 지방(피레네 산맥 남북 프랑스, 스페인에 걸친 지역)에서도  옛날부터 행해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관계를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그러나 쥬 드 폼므 경기는 프랑스와 영국에서 생성, 발전을 이뤄  곧 「론 테니스」로 전환하고 있었다고 하는 속설이 통용되고 있지만 정설은 아니다. 여하튼 테니스의 정식 명칭은 론테니스라고  하며 빅토리아 왕조시대의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당시의 경기로는 크리켓이 있었으나 넓은 저택의 잔디밭에서 할 수 있는 활동적인 스포츠를 원했다. 이 소망은 1873년 인도 주재군의 소령이었던 영국 사람 윙필드(W. Wingfield) 소령에 의하여 급성장하게 되었다. 19세기 후반 대영제국의 중산층들은 늘어나는 여가  시간을 주체할 수 없어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  결과 1874년 윙필드는 일정한 코트와 네트를 만들었으며 1875년에는 메릴리본 크리켓 클럽(Marylebone Cricket  Club)에서 규칙을 통일함으로써 근대 스포츠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이어  1877년에는 제 1회 영국 선수권 대회가 윔블던에서 열려 지금까지도 가장 권위 있는 대회로 이어져오고 있다. 1896년 제 1회 아테네 올림픽 대회에서 정식 경기  종목으로 채택되었으나, 프로 선수의 참가가 문제가 되어 1928년 제9회 암스테르담 올림픽 대회부터 경기 종목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다가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대회에서 64년 만에 다시 정식 경기 종목으로 부활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원문:첨부참조)
 
한국의 테니스 역사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테니스 경기가 시작된 것은  1900년대부터였다. 1908년 4월 18일자 탁지부(현재 재경부) 관리들이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회동구락부를 조직한  뒤 미창동에서 테니스 코트를 마련해 경기를 시작한 것이 우리나라 테니스의  시초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일본에서 파생한 연식 정구였으며 테니스(Lawn tennis, 경식정구)는 그보다 훨씬 뒤의 일로써, 정식 경기가 열린 것은 20여년이나 지난 후였다. 1927년 9월 24일부터 25일까지 서울 용산의 철도국 코트에서 일본 오사카 매일신문사 경성지국 주최로 제1회 테니스 선수권대회가 열렸으며 이것이 우리 나라에서 열린 최초의 테니스 경기이다. 이 경기에서 상업은행 소속의 김필응 선수가 단식 경기에 출전했는데 경기 도중 기권하여 일본인이 우승했으며, 복식 경기에서도 일본이 우승했다. 이 때만 해도 테니스공은 연식보다 구하기 어려웠으며 또한 연식이 널리 보급되어 있었던 때인지라 테니스 경기를 하는 것은 극히 어려웠다. 그러나 제1회 선수권대회 후, 경성 사범학교와 용산 철도국을 중심으로 테니스 경기를 많이 하였으며 같은 해 12월 3일부터 7일간  미국 보스턴시에서 열린 전미주대학 테니스  선수권 대회에 대구 출신으로 보스턴 대학에 재학 중이던 김태구 선수가 참가하여 선수권을  획득했다. 김태구 선수의 우승은 한국 테니스계에 큰 자극제가  되었으며 1928년 10월 13일부터 5일간 경성운동장에 열린 제4회 조선 신궁경기대회에서 테니스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같은 해 4월 10일에는 경성제국대학 주최의 제1회 중등학교 테니스 대회가 경성 운동장에서 열렸다.
1930년 9월에 세브란스병원의 오한영, 체신국의 강성태 등이 서울경구  구락부를 조직, 국내 최초의 테니스 클럽으로 발족하여 재경 서양인들과 경기를 자주 하였다.
1938년 8월 27일부터 28일까지 양일간 만주 신경에서 열린 제1회 조선·만주대항  테니스대회에서 우리나라의 길인형, 백윤복, 박용선, 황기성, 권인복, 김태식, 이봉기, 김영준, 장일강, 정사련 등의 선수가 출전한 최초의 원정 경기에서 7대6으로 우승하였다. 그러나 발전도상에 있던 테니스는 1942년부터 일제의 운동금지 조치로 중지하게 되었으며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테니스 코트도 태평양 전쟁에 광분하던 일제의 식량 증산을 위한다는 구실 아래 파헤쳐졌으며 감자나 호박, 채소, 피마자 따위를 심게 되고 말았다. 해방과 더불어 1945년 10월 1일 조선테니스협회가 발족하였으며 이듬해 1946년 7월 25일 제1회 전국테니스선수권대회가 개최되어 잃었던 경기를 다시 열게 되었다. 이후  연식에서 테니스로 전향하는 선수들이 많이 늘어나 테니스계는  활발해지기 시작하였다. 1948년 6월 16일에는 서울운동장에서 대한테니스연맹이 주최한 제1회 전국 일반학생  테니스대회가 열렸으며, 1949년 4월 17일에는 테니스연맹이 일반인과 대학생의  경기를 개최한 바 단복식 모두 학생팀이 승리를 하였다.
그러던 중 뜻하지 않던 6·25 동란으로 테니스 경기도 한 때 중단되었다가 정부 회복 후 다시 부활하기 시작하였다. 그후 1953년  9월 테니스협회는   대한체육회에 정식으로 가입했으며   대한테니스협회(The Korean Lawn Tennis Assocition)로 명칭을 바꾼 협회는 1954년 5월 16일 서울운동장 코트에서 한미 친선 테니스대회를 개최하였다. 비록  한국팀이 우승하였으나 미국인들의 강력한 서비스와 과감한 스매시, 경쾌하고 결정적인 발리 등에서 한국  테니스계는 많은 것을 배웠으며 그해 10월 5일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테니스 선수인 크래머(미국),  세그러(에콰도르), 곤잘레스(멕시코), 세찌맨(호주), 미8군 테니스 코치  골든 등 선수들의 시범 경기가  있었다.
이 경기를 통하여 테니스계는 물론 일본 관중들까지도 그들의 묘기에 경탄했으며,  테니스의 과학적인 연구의 필요성을 느끼고 그에 대처할 수 있는 연습 방법을 쌓아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 외국 선수들의 시범 경기는 한국 테니스 경기 발전에 커다란 자극제가 되었다.
1956년 9월에는 자유중국의 극난테니스팀이 내한하여 친선 경기를 한 결과 남자는 3대0으로 한국이 승리하고, 여자는 3대0으로 자유중국팀이 승리했다. 1957년 9월에는 우리 국군테니스팀이 자유중국에 원정하여 7전3승4패의 기록을 남겼으며, 1958년 제3회 아시아 경기 대회에 이상훈 등 4명의 선수가 참가하여 좋은 기록은 아니었으나 많은 기술을 배웠다.
1959년 1월에는 한국 대표팀이 자유 중국에 원정하여 4전승하였으며, 홍콩에서는  3전 2승 1패를 기록하였다. 그 후 1960년부터는 국제 경기의 진출도 활발해졌으며 1960년도부터 데이비스컵 테니스 동부지역 예선대회에 해마다 출전(1961년만 기권)하여 임충량, 김두환, 정영호 등의 선수들이 선전했으며 1969년과 1970년의  세계 청소년테니스챌린지볼 챔피언  경기와 선샤인컵, 조지·스매더스대회에 출전하였으며, 조시·스매더스대회에서는 코스타리카를  2대0으로 물리쳤으나 결승전에서 이스라엘에게 1대2로 패하여, 한국은 2위를 차지한 바 있다.
또한 전일본 테니스 선수권 대회에도 1964년도부터 출전, 1969년에는  한국 테니스 외국 원정 이래 처음으로 혼합복식 조에서 김두환, 양정순 선수가 입상하였으며 양정순 선수는 여자 단식에서도 입상하였다 특히 1970년 이후부터 테니스붐을 타고 우리나라에도 급속히 보급·발전되어 1982년 2월 인도 뉴델리에서 개최되었던 제9회 아시아 경기 대회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은 4개 종목에서 우승, 테니스 한국의 앞날을 밝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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